한일갈등의 정치경제학과 노동자 민중의 과제

  • 글쓴이: 배성인(성공회대)
  • 2019-12-08

 불매운동의 성과(?)

 지난 여름 내내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조국사태’로 인하여 거의 모든 이슈가 사라졌다. 전국적 수준에서 ‘반아베’를 외치며 일치단결하여 불매운동을 펼치게 만든 한일갈등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이슈가 더 중요한지 질문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정치적 문제이면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위는 국가주의에 다름이 아니지만 한국의 정치문화이면서 풍토병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자신들의 공동체를 사랑하는 소박한 마음이 곧 정의이고 진리라는 사유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로의 발호와 확대에 대한 경계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된다.

 조국 사퇴로 인하여 정치지형이 조금 변화하면서 한일문제가 다시 조금씩 거론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화를 모색하려고 하지만, 시민사회의 반아베 감정과 불매운동은 초기보다 줄어들었음에도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관점은 다르지만 일본의 반한 감정 못지않게 한국의 반일감정도 만만치 않다.

 10월 21일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일본의 통계를 인용해서 그 동안 한일 무역 결과를 일제히 보도했다. 일본 재무성이 내놓은 9월 무역통계에 의하면 지난 9월 한 달간 일본의 한국 수출액은 4천28억엔(약 4조3천억원)으로 작년 같은 시기보다 15.9% 줄었다. 수출이 줄어든 만큼 무역흑자도 25.5% 급감했다. 일본 정부가 올 7월에 수출 규제를 시작한 후, 불매운동이 본격화한 8월과 비교해서 두 배 정도 수출이 줄어든 것이다. 또 이 기간에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액은 2천513억엔으로 8.9% 감소했다. 이는 한국의 일본 불매 운동이 9월 들어 한층 확산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그런데 시민사회의 힘으로 만든 불매운동의 성과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까?

 

 아베의 일본, 군국주의로 진격

 아베 정권은 극우 포퓰리즘과 군국주의 세력의 전형이다. 아베는 2006년에 집권 1기를 시작하면서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형성된 ‘전후 체제에서의 탈피’를 공언했다. 아베의 도발은 이때부터 본격화되었다. 태평양전쟁의 일본인 A급 전범을 단죄했던 도쿄 재판에 대해서도 강력히 비판하는 역사 도발을 저질렀다. 이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까지 부정하였다. 원자력 대국으로 잠재적 핵보유국의 야망까지 드러냈으며, 해석개헌으로 평화헌법까지 무력화하는 등 아베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또 재집권한 2012년 이후는 일본의 전후체제 총결산으로 헌법 제9조를 개악하기 위해 힘쓰고 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멸시와 배타주의로 일본의 국가주의를 부추겨 일본사회를 분리시켰다. 이러한 사회적 분리는 일상적으로 헤이트스피치가 넘치는 사회로 일본을 만들어 왔다.

 이번 아베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판결의 보복임과 동시에 일본국내의 배외주의를 선동하여 헌법개악을 위한 아베정권 지지율 확보를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아베는 국내 정세 상황을 보아가며 중의원도 해산해 새로 선거를 치룬 뒤,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 열기가 고조됐을 때 국민투표에 부쳐 개헌안을 통과시키려는 구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일 신밀월시대를 표방하며 ‘트럼프의 푸들’을 자처하면서 자위대의 지위변경과 전력 강화 그리고 방위력 강화를 위해 구체적인 행동에 돌입하였다. 최첨단 미국산 무기 구매를 확대한 것이다. 아베 정부는 이미 대당 가격이 8천만 달러에 이르는 F-35A 최첨단 전투기 105대를 미국으로부터 구매하기로 했다.

 게다가 최근 북미 협상과정에서 일본이 지속적으로 배제되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이제는 트럼프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다. 아베가 미국의 중재까지 거부하며 남한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고 호르무즈 자위대 파견조차 거부한 것이 직접적인 증표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배제되면 동아시아에서의 역할은 더욱 축소될 것이고 아베가 원하는 정상국가의 길은 더욱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노동자민중의 과제

 아베에 의해서 촉발된 한일갈등은 무역전쟁, 경제전쟁, 역사전쟁이 분명하지만,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제국주의 전쟁이다. 이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래 자본주의 쇠퇴가 가속화되면서 격화될 수밖에 없는 제국주의 열강 간의 패권쟁투다.

 특히 동아시아는 미중, 한일이 엎치락뒤치락하며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여기에 러시아도 개입력을 높이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 상황의 근본에는 세계 패권을 노리는 제국주의 세력들의 이합집산과 다툼이 놓여있다.

 노동자민중이 한일갈등에 임하는 자세는 노동자 국제주의와 한일 민중연대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에 매진하면 된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반아베 전선에서 반일본 전선으로 확대되지 않게끔 내부 투쟁을 통해 견지하면서 대중들의 동의를 획득해야 한다. 특히 경제전쟁을 명분으로 노동자 착취를 강화하려는 한국의 독점자본과의 투쟁을 선포하고 대중들을 설득해서 동참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대중들을 가르치는 엘리트주의 시대가 아니다. 일반 대중보다 진보적 지식인들이 결코 낫지 않기 때문이다.

 몇 가지 투쟁 과제를 제시하면 첫째, 한일 노동자연대는 필요조건이다. 정부와 자본의 반노동공세에 맞서 투쟁을 조직화해야 한다. 일본에서 진행되는 노동탄압에 맞선 연대도 긴급하다.

 둘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투쟁에 복무해야 한다. 65체제는 53체제를 그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한반도 냉전질서의 해체는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중요한 지렛대가 되어야 한다. 이에 한반도 평화를 위한 투쟁은 미 제국주의의 한반도 영향력을 유지하는 고리를 끊어내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투쟁은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주한미군 없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남북간 군축, 한반도-동북아 비핵지대화, 한미일 삼각군사동맹 폐기가 되어야 한다.

 셋째, 반제국주의 반전평화의 관점에 선 동아시아 민중 연대가 필요하다. 미중 갈등, 한미일 삼각군사동맹 강화를 핵심으로 한 동아시아 긴장격화 맞선 동아시아 민중 연대는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카우츠키를 비판하면서 일본의 조선합병을 예로 들어 제국주의의 본성을 고발했다.

 “한 일본인이 미국의 필리핀 병합을 비난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문제는 이렇다. 그 일본인의 비난에 대해서 사람들은 과연 그가 필리핀 병합의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병합 그 자체를 진정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결국 우리는 오직 그 일본인이 일본의 조선 병합에 반대하여 싸우고 일본으로부터 조선이 분리될 자유를 요구하는 경우에만 그가 진정 성실하게, 또 정치적으로 정직하게 병합에 반대하여 투쟁한다고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