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한반도 정세와 북미 관계 정상화의 가능성

  • 글쓴이: 배성인(한신대 연구교수, 노동자교육센터 운영위원)
  • 2018-03-26

 불과 몇 달 전만해도 ‘말 폭탄’을 주고받고 전쟁불사를 외치던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속전속결로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5월에 만나겠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번 합의에 대한 배경과 과정을 두고 다양한 분석과 평가가 난무하고 있고,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수많은 변수로 인하여 그 어느 때 보다 세밀함과 신중함이 요구된다. 이번 ‘3.6남북합의’는 남한의 제안에 북한이 동의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는 남한을 특사로 해서 북미정상회담 합의를 성사시켜 남한과 미국의 체면도 살려주고 대화의 명분도 찾으면서 통 큰 결단이라는 호평을 받는 자신감의 발로이다. 각자 자기 포지션에 맞는 역할 분담에 충실했기 때문에 모두가 불만을 최소화하게 되었다.

 합의 내용을 보면 남북정상회담 개최, 정상간 핫라인 설치, 북 비핵화 의지 표명, 북미대화 용의 표명, 대화기간 핵실험 및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남한의 태권도시범단과 예술단 초청 등이며, 아울러 김정은 위원장이 조만간 재개될 예정인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서도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며 한반도 정세가 안정기로 진입하면 조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곧장 북미정상회담 5월 개최를 이끌어냈다.

 

 미국의 불만과 열악한 선택

 트럼프가 북미정상회담을 수용한 과정을 보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복원된 것으로 알려진 ‘뉴욕 채널’을 통해 2017년부터 최선희 국장 등과 북미대화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이는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2017년 9월말 중국 방문 당시 북한과 2~3개의 대화채널을 열어두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고,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의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하였다.

 그런데 북한이 지난 1월 1일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대화를 제안했고 문재인 정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맥시멈 프레셔’(Maximum Pressure: 최대의 압박)를 좀 더 진행시켜 북한으로 하여금 양보를 얻어내고 협상을 진전시키려는 의도였는데, 문재인 정부의 성급한 주도를 불편하게 인식했던 것 같다.

 펜스 부통령의 평창 올림픽에서의 부적절한 행동과 천안함이 전시되어 있는 2함대 사령부 방문 그리고 탈북자 면담 등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강한 불만과 항의의 표현이었다. 여기에 일본 아베 총리의 한미연합훈련 재개 발언 등이 더해져 미일 동맹국들의 횡포는 가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과 펜스 미 부통령의 회동 무산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현장에서 펜스 부통령의 반북태도와 무시 전략은 북한으로 하여금 펜스와의 대화가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가 이방카를 보낸 점 그리고 천안함 논란을 일으킨 김영철의 방남 등 일련의 복잡한 과정은 그 동안의 남북미 관계가 어떻게 그려졌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미국은 확인 차원에서 남한을 내세워 특사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트럼프가 미국 내 불안한 입지를 만회하고 중간 선거를 유리하게 끌고 가고 싶은 욕심과 함께 남북한이 정세를 활용하여 화답한 측면이 있다.

 다만, 트럼프는 미국을 방문한 정의용, 서훈 특사로부터 김정은의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나중에 알려지겠지만 그 메시지는 획기적인 제안일 것이다. 추측컨대 최근의 북중 관계를 고려하면 북한이 북중간의 동맹관계를 해체하고 미-중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겠다는 약속일 수도 있다. 이러한 약속이 가능하려면 북미협정보다는 핵동결 및 비확산 조건과 교환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북미협정을 하고 핵폐기 수순에 들어갈 것이다.

 

 북한의 선택과 자신감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번 합의에 적극적이며, 선제적으로 비핵화를 공언했을까?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것은 매번 되풀이되는 상식적인 이유이기 때문에 결정적이지 않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동기가 필요하다. 대북제재의 실효성이 중국과 러시아의 참여가 전제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이미 판명이 났다. 최근 북한이 강도 높은 대북제재의 압박을 견뎌내기 위해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등 내부결속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소식이다. 2017년 후반에서 2018년 1월까지 제재의 효과를 가늠할 수 있는 두 지표인 북한의 쌀값과 환율은 매우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트럼프가 지난 2월 23일 “대북제재 효과가 없으면 매우 거친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경고한 것 역시 이를 증명하고 있다(조선일보, 2018년 2월 24일). 이러한 발언은 대북제재의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없다는 혹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수출주도형이 아닌, 자립주도형의 북한, 그리고 그 동안 제재에 맞서 적응력이 강해진 북한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핵무기 보유 국가’로서의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에게 핵무기 개발을 바탕으로 체제보장과 함께 생활 여건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자 할 것이다. 어차피 비핵화문제는 단기간에 결정될 문제가 아니라 험난한 협상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 내부적으로 안정적이고 착실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 시간에 경제적 문제 해결과 핵무기를 고도화시킬 여지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 올해 초 발표한 북한의 공동사설에서 밝혔던 내용을 일정에 따라 실천하는 과정으로 보면 이해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번 합의는 북한에게 꽃놀이패다.

 

 남은 과제는

 북미관계 정상화는 이처럼 북미의 ‘비핵화 협의’에서 시작해 북미관계 정상화 및 한반도 비핵화로 이르는 경로를 통해서나 아니면 ‘핵동결 및 비확산’에 이르는 경로를 통해 실현될 것이다.

 미국이 두 가지의 경로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 여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몫이다. 트럼프가 어떤 경로를 선택하든 그 결과는 동일할 것이다. 미국의 지배세력들 대부분이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가 이를 중재할 수 있는 역량도 여지도 없다. 남북관계는 북핵 문제와 함께 서로 풀려나가고 촉진하는 선순환 구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만 북미 관계 개선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북미간 재대결 구도는 예측불허다. 순조롭게 출발한다 해도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변수가 너무 많아서 언제 좌초될지도 모른다. 북한으로서는 미제국주의와의 한판 승부처가 될 것이다.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이 북한의 ‘핵확산 가능성’으로 균열을 낼 여지가 많다.

 이제 공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트럼프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